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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기업인, 전 신문기자

출생 1936년, 서울특별시

소속 광원산업(회장), 카이스트 발전재단(이사장)

수상 2018년 국민훈장 목련장

경력 2013.01~ 카이스트 발전재단 이사장

광원산업 회장

광원산업 대표

서울경제신문 기자

 

지난달 30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는 광원산업 이수영 회장이 출연했다.

카이스트에 766억원을 기부한 이수영 회장은 “어떻게 이렇게 큰 금액을 기부할 생각을 하셨냐”는 질문에 “서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연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여러분도 아껴 쓰고 저축하며 살면 된다. 간단하다”고 쿨하게 답해 감탄을 자아냈다.

이를 들은 유재석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남을 위해 단돈 1원 안 쓰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 이수영 회장은 “저는 기부를 또 할 예정이다. 제가 앞으로 더 살 거니까 돈이 또 모일 거 아니냐. 정리 안 된 돈도 있고”라고 했다.

그는 수백억 재산의 비결에 대해 “첫째는 근검절약, 둘째는 버스 지나간 다음에 뒷북치지 말기”라며 “나는 요새 홈쇼핑을 즐기고 있다. 집에 있으니까 TV를 자주 본다"고 말했다.

또 “옷에는 큰 돈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차는 벤츠를 탄다. 의료비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재석이 “나중에 코로나가 끝나면 육포를 들고 찾아가겠다”고 말하자 이수영 회장은 “빈손으로 와라. 탤런트들이 무슨 돈을 벌겠냐”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평생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내놓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나는 휴지 한 장도 찢어 쓸 정도로 아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명분이 있으면 씁니다. 돈은 필요할 때 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씨 뿌리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거둬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돈 모으고 재산 불리면 그것으로 거둔 삶 아니냐고 말하지만,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바로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무엇을 하든 씨앗을 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권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거창한 가치를 말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진정 위한다면 기부하라고 말합니다. 부모 재산을 물려받은 부잣집 자식들이 떵떵거리고 살다 쉰 살이 되기도 전 가산을 탕진하는 사례도 자주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범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사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우고 자라면 자손도 그렇게 합니다.”

이 회장은 “그런 점에서 어머니한테 배운 게 많다”고 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어머니는 그 어려운 전쟁 통에도 문 앞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숨겨뒀던 쌀로 죽을 끓여 이웃에게 나눠줬습니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준다는 일이 그렇게 흐뭇하고 보람된 것인지 체험으로 배웠습니다. 또 평생 내 가슴에 잊히지 않는 말이 있는데, 경기여중에 다닐 때 종로구 내수동 종교교회 장로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말인가요.

“‘미국이 한국을 도우러 올 때 배에 구호물품을 잔뜩 싣고 왔다 갈 때는 빈 배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배에는 축복과 은혜가 가득 실려 있다. 그런 축복과 은혜 덕분에 미국 사람들은 베풀면 베풀수록 부자가 되는 것이다.’ 대략 이런 말이었습니다.

나 역시 내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왔다 갈 때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텐데 그 손에 축복과 은혜, 감사의 마음이 가득 실려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결심했으면 빨리 기부하라고 독려한 남편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입에서는 거친 풍파를 헤치며 살아온 사업가의 언어가 아닌, 인생을 성찰하며 살아온 지혜로운 할머니의 언어가 담겨 있었다.

“주변에서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배운 것도 많습니다. 서울대 법대 장학재단 모금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생 출신 할머니였습니다.

평생 악착같이 돈을 모은 그는 주변의 소개로 알게 된 내게 5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5억 원이 넘는 큰돈이었죠. 본인 말처럼 ‘더럽게 번 돈’일 수 있지만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 선뜻 내놓은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기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얼마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큰돈이 아니어도 힘들게 모은 돈을 좋은 일에 쓰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구경하면 좋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욕심을 채워도 끝은 결국 죽음이라는 건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 여든에 결혼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연애도 했는데 어찌어찌하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편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졸업하고 한참 뒤 동창 모임에서 만났죠.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검사장 나갈 나이에 때려치우고 변호사를 했는데 돈 벌 줄은 모르는 사람입니다.(웃음)”

-신혼 4년 차인데 좋으십니까.

“나쁘지 않지요 뭐.(웃음) 혼자 살 때는 잘 때 전깃불 끄는 것도 힘들었는데 불도 꺼주고. 잠자리도 봐주고. 이불도 덮어주고.”

-손도 잡고 주무십니까.

“손을 왜 잡아요. 다리는 걸고 잡니다.”

-기부할 때는 뭐라고 했나요.

“우리 부부는 철저히 부부별산제입니다. 기부를 결심했으면 되도록 빨리 하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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